분류 전체보기92 빈대떡 빈대떡빈대떡은 특별한 날만 먹던 음식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더 자주 생각나는 그 고소한 맛. 콩을 갈고, 부추와 김치를 넣어 지글지글 부쳐지는 소리는 마치 마음을 굽는 소리 같았다. 바삭한 겉과 촉촉한 속, 기름 냄새에 묻어나는 어머니 손맛까지. 빈대떡은 단순한 부침이 아니라, 정과 기다림이 노릇노릇 익어가는 추억의 조각이다.■□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스승과 달삼은 마을 어귀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섰다.기름 냄새 가득한 공간에서, 빈대떡이 부쳐지는 소리가 정겹게 퍼지고 있었다.달삼은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스승님, 이 냄새 참 오래된 기억 같아요.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서 비 오는 날 꼭 이걸 부쳐주셨어요.”스승은 기름이 튀는 팬을 바라보며 말했다.“그 시절엔 빈대떡이 귀했지. 명절이나 큰 장날 .. 2025. 4. 14. 막걸리 막걸리막걸리는 탁하다. 투명하지 않아서 더 사람 같다. 한 모금 넘기면 구수한 맛이 퍼지고, 끝엔 은근한 단맛이 남는다. 그래서 막걸리는 노동의 땀과 웃음이 섞인 술이다. 절제보다 다정이 먼저고, 체면보다 속내가 먼저다. 막걸리는 취하기 위해서보다 함께 있기 위해 마시는 술이다. 고단한 하루 끝, 누구의 말없이 건넨 잔에, 삶의 위로가 묻어 있다.■□해가 기운 오후, 스승과 달삼은 마을 회관 옆 평상에 앉아 있었다.두 사람 사이엔 흰 막걸리 한 병과 찬안주 몇 가지가 놓여 있었다.달삼이 컵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스승님, 맑은 술보다 이 탁한 막걸리가 더 정겹게 느껴져요.”스승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맑은 건 보기엔 좋지만, 속 깊은 맛은 탁한 데 있지. 막걸리는 말이야… 사람 같아. 처음엔 뻣.. 2025. 4. 14. 엿장수 엿장수엿장수는 소리를 먼저 보낸다. “엿—” 하고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아이들보다 먼저 골목을 적신다. 엿은 쉽게 녹지 않고, 오래 씹어야 달다. 그래서 엿은 정겨운 인내의 맛이다. 흙 묻은 손에 쥐고도 소중했던 한 조각. 엿장수는 단지 단 것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골목마다 추억을 퍼뜨리던 사람이다. 기억 속의 엿소리는 아직도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린다.■□달삼은 비어 있는 골목을 걷다가 문득 물었다.“스승님, 어릴 적에 엿장수 소리 들으면 어디서든 뛰어나오셨죠?”스승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엿—’ 하고 멀리서 소리만 들려도 다들 반사적으로 뛰어나갔지. 그 소리는 단순한 장사의 외침이 아니라, 기다림의 신호였거든.”달삼은 그 소리를 흉내 내며 웃었다.“그땐 왜 그렇게 엿이 좋았을까요? 요즘처럼 화.. 2025. 4. 14. 시골이발소 시골이발소시골이발소는 조용히 흐르는 시간의 정거장이다.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익숙한 손놀림과 변함없는 인사로 하루를 맞는다. 낡은 거울 앞에 앉아 있으면, 단순히 머리만 다듬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조금씩 정리된다. 사람의 지친 얼굴에 가장 먼저 손을 대는 곳—그래서 이발소는 단정함을 넘어선 회복의 장소다. 무딘 가위와 따뜻한 손길은 인생을 말없이 매만진다.■□달삼은 골목 끝, 작은 간판이 걸린 이발소 앞에서 멈춰 섰다.“스승님, 이런 곳은 오랜만이에요. 요즘은 다 미용실이지, 이발소는 잘 안 보이거든요.”스승은 웃으며 문을 밀고 들어섰다.“그래도 여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의자, 거울, 고무 받침, 심지어 빗살까지 예전 그대로야.”주인장은 익숙한 인사로 맞아주고, 스승은 먼저 의자에 앉았다.달삼.. 2025. 4. 14. 누룽지 누룽지누룽지는 밥을 다 짓고 난 뒤, 가마솥 바닥에 눌어붙은 흔적이다. 본래는 남겨진 자리지만, 물을 부어 다시 끓이면 고소한 향과 따뜻한 국물이 된다. 그래서 누룽지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타지 않고 남는 것, 버티고 눌러앉은 것—그것이 삶의 내면을 더 단단히 만든다. 누룽지는 인생에서 한 번쯤은 눌려본 이들에게 주는 고요한 보상이다.■□저녁 무렵, 장작불에 밥을 짓고 난 뒤스승은 조심스레 가마솥을 긁어 누룽지를 덜어냈다.달삼은 구수한 냄새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스승님, 전 누룽지 냄새만 맡아도 어릴 적 생각이 나요. 겨울날, 이거 부숴서 끓여 먹으면 그렇게 따뜻했거든요.”스승은 그릇에 물을 붓고 다시 불에 올리며 말했다.“누룽지는 밥보다 더 깊은 맛이 있지. 얇고 바삭하지만, .. 2025. 4. 14. 보리밥 보리밥보리밥은 꾸밈없는 음식이다. 윤기 없이 투박하고, 씹을수록 거칠지만 속은 든든하다. 화려한 반찬이 없어도, 따뜻한 된장 하나면 충분한 밥. 그래서 보리밥은 겉보다 속을 중요시하는 음식이다. 삶도 그렇다. 겉으로 화려하진 않아도, 안이 단단하면 오래 버틸 수 있다. 보리밥처럼 단단하고 소박한 하루, 그건 가난이 아니라 성실의 맛이다.■□점심 무렵, 시골 식당에서 스승과 달삼은 커다란 양푼에 담긴 보리밥을 마주했다.달삼은 수저를 들며 말했다.“스승님, 이 밥은 씹을수록 입안이 메말라요. 쌀밥보다 훨씬 투박하고요.”스승은 된장찌개를 떠올리며 말했다.“그래서 된장이 함께 나오지. 보리밥은 혼자선 거칠지만, 곁이 있으면 훨씬 부드러워지거든.”달삼은 나물 한 젓가락을 올려 다시 먹으며 말했다.“먹을수록 든든하.. 2025. 4. 14. 이전 1 2 3 4 5 6 ···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