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92 첫새벽 - 시인 한강 첫새벽 첫새벽에 바친다 내 정갈한 절망을, 방금 입술 연 읊조림을 감은 머리칼 정수리까지 얼음 번지는 영하의 바람, 바람에 바친다 내 맑게 씻은 귀와 코와 혀를 어둠들 술렁이며 포도를 덮친다 한 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 텃새들 여태 제 가슴털에 부리를 묻었을 때 밟는다, 가파른 골목 바람 안고 걸으면 일제히 외등이 꺼지는 시간 살얼음이 가장 단단한 시간 박명 비껴 내리는 곳마다 빛나려 애쓰는 조각, 조각들 아아 첫새벽, 밤새 씻기어 이제야 얼어붙은 늘 .. 2025. 3. 23. 기다림의 미학 기다림의 미학 세상을 살다 보면 문득 꽃나무 앞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봄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거나, 장미의 짙은 향기가 공기를 감쌀 때,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동시에 그 찰나의 덧없음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다. 바로, 그 순간을 위해 나무가 견뎌온 긴 시간이다. 꽃나무는 일 년 내내 꽃을 피우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꽃 없이 보내며, 조용히 내면을 다지고 또 다진다. 보이지 않는 뿌리를 깊이 뻗고, 잎을 키우며, 다시 올 개화의 순간을 위해 묵묵히 힘을蓄積(축적)한다. "눈부신 순간이 찾아오기 전, 흙 속 깊이 새겨진 인내가 있다." 꽃이 피.. 2025. 3. 23. 이전 1 ··· 13 14 15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