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장수
엿장수는 소리를 먼저 보낸다. “엿—” 하고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아이들보다 먼저 골목을 적신다. 엿은 쉽게 녹지 않고, 오래 씹어야 달다. 그래서 엿은 정겨운 인내의 맛이다. 흙 묻은 손에 쥐고도 소중했던 한 조각. 엿장수는 단지 단 것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골목마다 추억을 퍼뜨리던 사람이다. 기억 속의 엿소리는 아직도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린다.
■□
달삼은 비어 있는 골목을 걷다가 문득 물었다.
“스승님, 어릴 적에 엿장수 소리 들으면 어디서든 뛰어나오셨죠?”
스승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엿—’ 하고 멀리서 소리만 들려도 다들 반사적으로 뛰어나갔지. 그 소리는 단순한 장사의 외침이 아니라, 기다림의 신호였거든.”
달삼은 그 소리를 흉내 내며 웃었다.
“그땐 왜 그렇게 엿이 좋았을까요? 요즘처럼 화려한 간식도 없었는데… 그 달고 질긴 맛이 참 오래갔어요.”
“엿은 한 번에 녹지 않아서 더 좋았어. 오래 씹어야 맛이 나고, 천천히 달아지는 간식. 지금의 삶도 좀 그랬으면 좋겠어. 천천히 씹고, 오래 느끼고.”
달삼은 벽에 기댄 채 말했다.
“스승님, 엿장수는 그저 장사꾼이 아니라 골목의 시간지기 같았어요. 언제 나타날지 몰라도, 그 소리가 들리면 모두가 하나가 되었죠.”
“그래. 엿은 단지 단맛이 아니라, 관계였어. 나눠 먹고, 뺏기고, 다시 얻고… 그 속에 소소한 인생이 있었지.”
달삼은 문득 조용해졌다.
“지금은 그런 소리조차 사라졌어요. 다들 이어폰 끼고, 스마트폰만 보니까. 그런 의미에서 엿장수는 소리로 사람을 모았던 마지막 사람이었는지도 몰라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소리는 마음을 먼저 움직이게 하지. 엿장수의 외침은 사람의 허기를 먼저 깨운 소리였어.”
달삼은 웃으며 말했다.
“요즘엔 어떤 외침이든 광고 같고, 계산이 보이잖아요. 그런데 엿장수 소리는 이상하게 정겨웠어요.”
“그건 그 소리가 우리 마음의 어디쯤을 건드렸기 때문이지. 그냥 장사소리가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소리였거든.”
달삼은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소리를 내는 사람이고 싶어요. 조용히 어딘가서 기다리게 하는, 따뜻한 소리로 남는…”
□
엿장수는 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모았다.
달삼은 배웠다. 진짜 울림은 눈에 띄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릴 수 있다는 걸.
그날 그 골목엔 엿장수도 엿도 없었지만, 어린 시절의 소리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달삼의 마음속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엿—’ 하는 그 울림 하나가, 아직도 다정하게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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