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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다정함 말 없는 다정함 말 없는 다정함은 말보다 깊게 남는다. 크게 표현하지 않아도, 조용히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내 눈치를 보며 밥을 천천히 덜고, 내 기분을 알아채고 먼저 물을 내밀어 준다. 말은 없지만 마음은 있다. 그 말 없는 다정함이 오래 남는 이유는 그 마음이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려한 말보다 고요한 배려에 더 오래 감동하고, 커다란 외침보다 조용한 손길에 더 많이 울컥한다. 다정함이란 소리를 내지 않아도 마음을 건네는 방식이다. 그래서 말 없는 다정함은 오래 남고, 삶을 오래 지탱해준다. ■□ 아침 찻잔 위로 김이 피어오를 때,.. 2025. 4. 10.
잿빛 심장 위에, 나무 한 그루 잿빛 심장 위에, 나무 한 그루 - 청람 하늘은 그날 입을 닫았다. 울음을 꾹 삼킨 구름들, 말 잃은 새떼가 허공에 머물고 능선은 마치 불길에 쫓기는 짐승처럼 서둘러 몸을 접었다. 숲은 함성도 없이 무너졌다. 타는 나무의 비명은 삶의 틈새마다 먹물처럼 번졌고 집 한 채, 시간 한 덩이, 이름 없는 하루가 재가 되어 흩어졌다. 창백한 대문을 열면 먼지보다 먼저 울음이 흘러든다. 벽에 걸린 그리움의 액자, 불타지 못한 한 줌의 기억은 여전히 타닥타닥 심장을 찔렀다. 텅 빈 마당, 무너진 식탁, 고양이를 부르던 그 목소리는 잿더미 아래 눌려 숨을 죽였다. "살았으니 다행"이라는 말은 슬픔 앞에 놓인 허전한 방석 같았다. 불은 떠났지만, 그들의 심장엔 아직 불씨가 남.. 2025. 4. 7.
첫새벽 - 시인 한강 첫새벽 첫새벽에 바친다 내 정갈한 절망을, 방금 입술 연 읊조림을 감은 머리칼 정수리까지 얼음 번지는 영하의 바람, 바람에 바친다 내 맑게 씻은 귀와 코와 혀를 어둠들 술렁이며 포도를 덮친다 한 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 텃새들 여태 제 가슴털에 부리를 묻었을 때 밟는다, 가파른 골목 바람 안고 걸으면 일제히 외등이 꺼지는 시간 살얼음이 가장 단단한 시간 박명 비껴 내리는 곳마다 빛나려 애쓰는 조각, 조각들 아아 첫새벽, 밤새 씻기어 이제야 얼어붙은 늘 .. 2025.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