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세상 다른 시선25 낡은 나무의자 낡은 나무의자낡은 나무의자는 말이 없었다.다만 모든 계절과 몸짓을 받아내며조용히 그 자리를 지켜냈다.달삼은 배웠다.반짝이지 않아도, 흔들려도 괜찮다고.중요한 건 오래도록 앉을 수 있는 마음이라는 걸.언젠가 누군가 지친 걸음을 멈출 때,조용히 내어줄 자리를 품은 사람이 되길 바랐다.■ 스승과 달삼의 대화 달삼은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삐걱대는 나무의자에 앉았다.물기 먹은 나무결, 군데군데 벗겨진 페인트, 앉을수록 익숙해지는 굽은 등받이.“스승님, 이 의자는 낡았지만… 이상하게 편해요. 처음부터 내 자리였던 것처럼요.”스승은 그 옆에 천천히 걸터앉으며 말했다.“오래 앉은 자리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자리야. 낡았다는 건 무너졌다는 뜻이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는 뜻이지.”나무의자는 처음부터 낡.. 2025. 4. 8. 잿빛 심장 위에, 나무 한 그루 잿빛 심장 위에, 나무 한 그루 - 청람 하늘은 그날 입을 닫았다. 울음을 꾹 삼킨 구름들, 말 잃은 새떼가 허공에 머물고 능선은 마치 불길에 쫓기는 짐승처럼 서둘러 몸을 접었다. 숲은 함성도 없이 무너졌다. 타는 나무의 비명은 삶의 틈새마다 먹물처럼 번졌고 집 한 채, 시간 한 덩이, 이름 없는 하루가 재가 되어 흩어졌다. 창백한 대문을 열면 먼지보다 먼저 울음이 흘러든다. 벽에 걸린 그리움의 액자, 불타지 못한 한 줌의 기억은 여전히 타닥타닥 심장을 찔렀다. 텅 빈 마당, 무너진 식탁, 고양이를 부르던 그 목소리는 잿더미 아래 눌려 숨을 죽였다. "살았으니 다행"이라는 말은 슬픔 앞에 놓인 허전한 방석 같았다. 불은 떠났지만, 그들의 심장엔 아직 불씨가 남.. 2025. 4. 7. 지식, 사람에게서 온다 지식, 사람에게서 온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스승의 지혜는 제자의 가슴에 고요히 스며든다. 달삼은 오늘도 스승의 곁에 앉아, 세상의 본질을 배운다. "지식은 학교에서 배우지만, 지혜는 사람을 보고 배운다," 스승의 말은 언제나 단단한 돌처럼 마음을 울린다. 그러던 날, 스승은 일본인의 성씨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를 꺼냈다. "달삼아, 넌 일본의 성씨가 왜 그렇게 많은지 아느냐?" 스승은 조용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씨를 가진 나라다. 대략 10만 개가 넘는다고 하지. 우리나라는 300개 남짓인데 말이다." 달삼은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스승은 책장을 한 장 넘기며 이야기를 풀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하던 시절, 오랜 전쟁으로 남자들이 대부분 전장에서 .. 2025. 4. 7. 시계 초침 소리 시계 초침 소리 시계 초침 소리는 작다. 귀 기울이지 않으면 놓치기 쉽고, 그마저도 일상 속 소음에 묻혀 사라지기 일쑤다. 하지만 고요한 새벽, 불 꺼진 방 안에 홀로 앉아 있노라면 그 작은 ‘째각’ 소리는 생의 숨소리처럼 느껴진다. 마치 "나 여기 있어" 하고 말하듯, 시간은 초침을 타고 성실히 흘러간다. 고단한 삶은 이 초침 소리와 닮아 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식탁 위에 놓인 식은 밥, 묵묵히 쌓여가는 설거지 그릇, 아무도 보지 않는 땀방울. 그 모든 것들은 화려하지 않다. 그렇다고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렇게 살아 뭐가 남느냐고. 그러나 그 묻는 이조차도 매일같이 초침처럼 걷고 있다. 멈추지 않고, 느리지만 꾸준히. 한 칸, 또 한 칸. 초침이 돌 때마다 삶.. 2025. 4. 7. 따뜻한 사람의 초상 따뜻한 사람의 초상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누군가는 화려한 겉모습으로 자신을 꾸미고, 또 누군가는 높은 지위를 가졌다고 거들먹거리며 살아간다. 진정으로 빛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는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존재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사람을 ‘멋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진정한 멋이란 무엇일까? 그는 먼저 마음이 따뜻하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주변을 보살핀다. 누군가 힘들어하면 자연스레 다가가 손을 내밀고, 말 한마디라도 건네며 위로한다. 굳이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주변을 따뜻하게 만든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그의 삶을 채운다. .. 2025. 4. 4. 사랑, 그 성숙의 길 사랑, 그 성숙의 길 ㅡ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에게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순간의 감미로운 향기나 가슴을 두드리는 감정의 격랑을 넘어, 한 인간이 온전히 다른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행위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능동적 실천'이라 했다. 사랑은 그저 감정의 흐름이 아니라 의지와 노력, 배려와 책임이 깃든 태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존재로 인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장을 돕고, 그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달콤하기만 할 수 없다. 만약 사랑이 그저 감미로움이라면,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사랑도 함께 소멸하고 말 것이다. 성숙한 사랑은 달콤함을.. 2025. 4. 4.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