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커피는 처음엔 쓰다. 하지만 그 쓴맛 너머엔 묘한 향과 깊은 여운이 남는다. 그래서 커피는 다정한 쓴맛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단맛만으론 깊지 않고, 쓴맛이 있어야 진짜 맛을 안다. 그래서 누군가는 커피처럼 살아간다. 쓰지만 따뜻하게, 조용히 마음을 데운다. 커피 한 잔은 잠시 멈춤이고, 오늘 하루를 다시 견디게 해주는 작은 쉼표다.
■□
오전 햇살이 창가를 비추는 카페에서,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달삼은 한 모금 마신 뒤 찡그리며 말했다.
“스승님, 저는 아직도 이 쓴맛이 익숙하지 않아요. 왜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할까요?”
스승은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
“쓴맛을 좋아한다기보다, 그 쓴맛 안에 머무는 향과 온기를 좋아하는 거지. 커피는 단순한 맛보다 그 뒤에 따라오는 여운이 중요한 음료야.”
달삼은 천천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근데 희한해요. 이 쓴 맛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아요. 복잡한 생각도 잠깐 멈추고요.”
“그게 커피의 힘이지. 단맛은 기분을 올려주지만, 쓴맛은 마음을 내려놓게 해. 내려앉은 마음이야말로 생각을 깊게 만들거든.”
카페 한구석에서는 누군가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창밖에선 햇살이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
“스승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꼭 하루의 쉼 같아요. 특별한 대화 없이도 괜찮고,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고요.”
“맞아. 그래서 커피는 혼자 있어도 좋고, 함께 있어도 좋은 음료야. 커피 한 잔 앞에선 사람이 다들 조금씩 조용해지지.”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사람도 커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쓰지만 따뜻하고, 조용히 곁을 내주는 그런 사람.”
스승은 조용히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
“그게 가장 깊은 사람이지. 강요하지 않고, 따뜻한 온도로 곁에 머무는 사람. 말보다 향으로 기억되는 사람.”
“그럼 저는 어떤 맛일까요, 스승님?”
스승은 웃으며 대답했다.
“처음엔 쓴 듯하지만, 곧 익숙해지는 맛. 그리고 다시 마시고 싶은 여운이 남는 맛. 딱 커피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지.”
달삼은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커피 한 잔처럼, 조용히 데워지는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
커피는 삶을 닮았다.
쓴맛이 있어야 깊고, 뜨거워야 온기가 남는다.
달삼은 배웠다. 다정한 말보다 한 잔의 커피처럼, 조용한 위로가 더 깊게 스며든다는 걸.
그날의 커피는 단지 음료가 아니었다.
하루를 다시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따뜻한 쉼, 그리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향기로운 시간이었다.
'말의 온도와 삶의 결 > 스승과 제자의 대화 - 실체의 추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룽지 (0) | 2025.04.14 |
---|---|
보리밥 (1) | 2025.04.14 |
숨결 (0) | 2025.04.14 |
달무리 (0) | 2025.04.14 |
그믐달 (0) | 2025.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