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숨결은 소리 없이 흐른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가장 분명한 살아 있음의 증거다. 삶은 거창한 성취보다, 매 순간 이어지는 작은 숨결들로 이어진다. 급히 내쉬거나, 조용히 머무는 숨 하나에도 감정이 깃들고, 의지가 실린다. 그래서 누군가의 숨결을 느끼는 일은 그 사람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사람 사이의 진짜 연결도, 결국은 이 조용한 숨결로부터 시작된다.
■□
겨울 끝자락, 두 사람은 언덕 위 평상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달삼은 찬 공기 속에서 입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스승님, 숨 쉴 때마다 보이네요. 마치 살아 있다는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아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평소엔 잘 느껴지지 않지만, 이렇게 차가운 날엔 숨결이 눈앞에 드러나지. 생명이란 게 바로 그런 거야. 늘 있었지만, 특별한 순간에야 비로소 의식되지.”
달삼은 가만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스승님, 숨을 쉰다는 게 당연한 건 줄만 알았는데… 문득 감사해지네요.”
“사람은 대부분 숨을 잊고 살아. 하지만 멈추면 비로소 그것이 전부였다는 걸 알게 되지. 숨결은 삶의 가장 단순하고도 결정적인 흐름이야.”
달삼은 조용히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 조용한 움직임 하나에도 생명이 담겨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숙연해져요.”
“우린 거창한 계획과 꿈 속에 살지만, 결국 삶은 이 작고 반복되는 숨 하나로 지탱되는 거지. 그래서 ‘숨’이 곧 마음이고, 생명이고, 기도야.”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사람 사이도… 숨결처럼 이어지는 걸까요?”
“맞아. 말보다 더 가까운 건 숨결이야. 누군가의 곁에 조용히 머물며 같은 공기를 나눈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을 인정하는 일이니까.”
그 말에 달삼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스승님, 힘들 때 누가 곁에 있어준 것만으로 숨이 트인 적이 있어요. 그때 말은 별로 없었는데… 그냥 그 사람이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됐어요.”
스승은 따뜻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게 진짜 위로지. 말은 없어도, 숨결로 전해지는 온기. 가만히 곁에 있는 사람, 그 존재 자체가 숨처럼 편안할 때가 있거든.”
□
숨결은 작고 조용하지만, 가장 깊은 연결이다.
달삼은 배웠다. 사람을 살리는 건 큰 말보다, 곁에서 조용히 숨 쉬는 존재라는 걸.
숨결처럼 다정하게 이어지는 관계, 말보다 묵직한 살아 있음의 증거.
그날 두 사람은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알게 되었다.
살아 있다는 건, 함께 숨 쉬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는 걸.
'말의 온도와 삶의 결 > 스승과 제자의 대화 - 실체의 추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리밥 (1) | 2025.04.14 |
---|---|
커피 (1) | 2025.04.14 |
달무리 (0) | 2025.04.14 |
그믐달 (0) | 2025.04.14 |
보름달 (0) | 2025.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