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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온도와 삶의 결/스승과 제자의 대화 - 실체의 추상화

멍석

by cheonglam 2025. 5. 31.
멍석

멍석



멍석은 펼쳐놓으면 자리가 된다.
들판이든 마당이든, 그 위에 앉으면 어느새 다정한 공간이 된다.
사람을 눕히고, 곡식을 널고, 아이들을 뛰놀게도 하는 멍석은 자리이자 품이다.
멍석 하나면 누구든 함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멍석은 환대의 상징이다.
초대하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마음, 그 따뜻한 허심을 멍석은 늘 펼쳐 보였다.


■□

가을 볕이 마당을 환하게 비추던 날, 스승은 멍석을 펼쳤다.

달삼은 조심스레 그 위에 앉으며 말했다.

“스승님, 어릴 땐 멍석 하나면 놀이터였죠. 굴렀다 앉았다, 손에 콩 껍질도 묻혀보고…”

스승은 한쪽 구석에 앉아 끈을 손질하며 말했다.

“멍석은 자리를 만드는 물건이지. 그 위에선 누구든 앉을 수 있고, 함께 나눌 수 있어.”

달삼은 가만히 멍석 위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요즘은 어쩐지 자리를 차지하려는 마음만 많고, 자리를 만들어주는 건 점점 보기 힘들어요.”

스승은 멍석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멍석은 넉넉해서 그래. 작아 보여도 여럿이 앉을 수 있고, 굳이 중심이 없어도 중심이 되는 자리야.”

“스승님, 멍석을 깔아준다는 말이 있잖아요.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고, 무대를 열어주는 뜻으로요.”

“맞아. 멍석은 사람을 높이지 않아도 빛나게 해. 별다른 장식도 없지만, 가장 큰 환대를 담고 있지.”

달삼은 멍석 끝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스승님, 전 누군가에게 멍석을 깔아줄 수 있는 사람일까요?”

“네가 먼저 멍석에 앉을 줄 안다면, 언젠가는 누군가를 위해 넓게 펼칠 줄도 알게 되지. 받아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거니까.”

바람이 멍석을 한쪽 끝에서 살짝 흔들었다.

달삼은 스승 옆으로 다가앉으며 말했다.

“사람 사이에도 멍석 같은 게 필요하겠죠? 다소곳이 앉을 수 있는, 경쟁이 아니라 나눔이 있는 자리.”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바로 공동체야. 자리를 나누고, 무대를 내어주고, 함께 웃는 자리. 멍석은 작지만, 그 위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크지.”




멍석은 자리를 만드는 마음이다.
달삼은 배웠다. 삶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걸.
그날 펼친 멍석 위에서 그는 다짐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앉을 곳 하나 내어주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햇살처럼 넓은 품으로, 다정하게 삶을 펴내는 멍석 같은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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