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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온도와 삶의 결/스승과 제자의 대화 - 실체의 추상화

등잔불

by cheonglam 2025. 4. 14.
등잔불

등잔불



등잔불은 세상을 밝히는 불빛이 아니다. 오직 방 하나, 사람 하나만을 위한 작고 조용한 빛이다. 그러나 그 작은 불빛 하나가 책장을 넘기고, 마음을 밝히고, 하루를 마무리하게 한다. 등잔불은 말하듯 흔들리며, 가르치듯 오래 머문다. 크지 않아도 충분하고, 느리지 않아도 깊다. 삶에도 그런 불빛 하나, 곁에 있으면 외롭지 않다.

■□

밤이 깊어질 무렵, 스승과 달삼은 방 안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전깃불은 끄고, 오래된 등잔 하나에 불을 붙였다.

달삼은 유리등 안에서 흔들리는 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 참 오래된 빛이에요. 전등보다 훨씬 작고 흔들리지만, 어쩐지 마음은 더 편안해져요.”

스승은 불빛 너머로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등잔불은 사람을 기다리는 불이야. 서두르지 않고, 눈부시지도 않고. 다만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 뿐이지.”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전엔 이 불 하나로 책도 읽고, 바느질도 하고, 편지도 썼죠?”

“그래. 그땐 빛이 귀했지만, 마음은 더 밝았지. 작은 불빛 하나에 온 가족이 모였고, 말 없이도 따뜻했으니까.”

불빛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달삼은 등잔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스승님, 요즘은 너무 밝아서 오히려 눈이 아파요. 정보는 넘치지만, 마음은 더 어두워지는 느낌이에요.”

“밝기만 한 건 깊이가 없거든. 등잔불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법을 안다. 그래서 더 고요하고, 그래서 더 오래 가.”

달삼은 조용히 불빛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저도 누군가에게 이런 등잔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작지만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스승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 마음이면 이미 네 안에 불이 켜진 거야. 등잔불은 밝으려고 타는 게 아니라, 함께 있으려고 타는 빛이거든.”

달삼은 한참을 말없이 등잔불을 바라보았다.

불빛은 아무 말 없이 흔들리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등잔불은 작지만 오래 남는다.
달삼은 배웠다. 삶도 꼭 밝고 커야 하는 건 아니며, 곁을 지켜주는 한 사람의 따뜻한 존재가 더 귀하다는 걸.
그날 밤, 전기가 꺼진 방 안에서 등잔불 하나가 말없이 속삭였다.
작아도 괜찮다고.
어둠 속에서 더 필요한 건, 바로 그런 조용한 빛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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