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달빛은 태양처럼 뜨겁지 않고, 별빛처럼 멀지도 않다. 그저 밤의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세상을 덮는다. 누구를 비추려는 욕심도 없이, 제 자리를 지키며 서늘한 위로를 건넨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오히려 달빛에 기대어 울고 웃는다. 눈부시지 않아서 좋고, 따스하진 않지만 마음을 식혀주기에 달빛은 오랜 친구처럼 머문다.
■□
달삼은 조용한 밤, 마당에 놓인 평상에 앉아 있었다. 밤공기는 선선했고, 머리 위엔 커다란 달이 걸려 있었다.
“스승님, 오늘 달이 참 크고 밝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눈부시진 않아요.”
스승은 그 옆에 앉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달은 늘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세상을 비추지. 사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존재를 드러내되, 부담스럽지 않게.”
“태양은 에너지 같은 느낌이라면, 달빛은… 음, 마음 같아요.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것.”
“맞아. 달빛은 대신 말해주지 않아. 다만 묵묵히 비춰줄 뿐이야.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고요한 위로가 필요할 때 달을 찾지.”
달삼은 손을 뻗어 달을 가리키려다 멈췄다.
“잡을 수는 없지만,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네요.”
스승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아. 태양빛을 받아서 반사할 뿐이지.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하지. 누군가의 빛을 받아 조용히 비춰주는 것, 그것도 귀한 일이야.”
“그럼 우리도 누군가의 빛이 될 수 있을까요? 혹은, 그 빛을 잘 비춰주는 달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달빛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어. 말 없이, 조용히, 곁에 머물며 마음을 비추는 사람. 가까운 거리에서 존재 자체로 안심이 되는 사람.”
달삼은 달을 바라보다 말했다.
“달빛 아래 있으면, 내 안의 어둠도 조금은 괜찮게 느껴져요. 감추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랄까.”
“달은 어둠이 있어야 빛나지. 태양 아래선 빛이 묻히지만, 어둠 속에선 달빛이 더 또렷하지. 우리도 상처와 어둠이 있을 때, 오히려 빛을 품게 되지.”
바람이 가볍게 불고, 나뭇잎이 흔들렸다. 달빛은 잎사귀를 따라 그림자를 남겼다.
“스승님, 저 그림자도 달빛이 만들어낸 거겠죠?”
“그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따라오듯, 우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비출 때도 그 사람 안의 어둠까지 함께 드러나는 거야. 진짜 위로는 그 그림자까지 함께 안아주는 거고.”
달삼은 긴 숨을 쉬었다.
“오늘은 그냥, 말없이 달빛처럼 있고 싶어요.”
“그 마음이면 충분해. 달빛은 말하지 않아도 다 전해지니까.”
□
달빛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제자리를 지킨다.
달삼은 배웠다. 빛나기보다 비춰주는 삶이 더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머물러주는 존재가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를.
그 밤, 달빛은 말없이 온 마당을 덮었고, 두 사람의 침묵을 더 깊게 만들었다.
그리고 달삼은 다짐했다.
누군가의 고요한 밤에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언제나 눈부시지 않게,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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