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롯불
화롯불은 타인의 숨결과 눈빛이 가장 가까이 닿는 불이다.
강하지 않지만 오래 가고, 번쩍이지 않지만 은근히 데운다.
불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자리엔 말보다 더 깊은 교감이 흐른다.
감자 하나를 넣고, 군밤을 얹고, 침묵 속에서도 서로가 연결된다.
그래서 화롯불은 그리움의 불, 기다림의 불, 다정의 불이다.
꺼지지 않게, 마음으로 돌봐야 하는 불.
■□
눈발이 성기게 날리던 겨울 저녁, 스승과 달삼은 마루 앞 화롯불을 피웠다.
스승은 숯을 얹고 조심스레 부채질을 했다.
“살아 있는 불은 급하게 키우면 안 된다. 천천히 숨을 맞춰줘야 해.”
달삼은 입김을 뿜으며 말했다.
“스승님, 불만 봐도 마음이 편해져요. 어릴 때 추운 겨울날 화롯불 앞에 앉아 감자 구워 먹던 기억이 나요.”
“그땐 불이 가족을 모으는 중심이었지. 말없이 둘러앉아도 괜찮았던 시간이 있었어. 불이 대신 말해줬거든.”
달삼은 군밤을 꺼내어 불 위에 얹으며 말했다.
“요즘은 이런 불을 보기 힘들어요. 난방은 편해졌지만, 함께 따뜻해지는 건 점점 어려워졌어요.”
스승은 불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롯불은 몸보다 마음을 덥히는 불이야. 조용하지만, 중심에 있어. 나눌수록 더 따뜻해지고, 지킬수록 오래 가.”
달삼은 불 속에 감자를 넣으며 말했다.
“스승님, 화롯불처럼 살 수 있을까요? 번쩍이진 않지만, 곁에 있는 사람을 데워주는 그런 삶.”
“그게 진짜 불이지. 세상을 태우는 불 말고, 사람을 덥히는 불. 그건 오래 간직할수록 빛나는 불이야.”
달삼은 말없이 손을 녹이며 불을 바라봤다.
군밤이 톡 터지는 소리, 감자 껍질이 익어가는 냄새, 침묵 속에서도 흐르는 정이 있었다.
“스승님, 저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지켜봐야 하죠?”
“그래. 사람 마음도 그래. 그냥 놔두면 금세 식어버리지. 화롯불처럼, 가까이서 조심스레 돌봐야 오래 데워지는 법이야.”
달삼은 불 옆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따뜻하다는 건, 함께 있다는 뜻이라는 걸.”
□
화롯불은 작지만 깊은 불이다.
달삼은 배웠다. 삶도, 사랑도 불꽃처럼 화려할 필요는 없다는 걸.
오래도록 지켜야 따뜻해지는 것들, 말없이 곁을 데우는 다정함.
그날 밤 화롯불을 바라보며 그는 다짐했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 한구석에서, 꺼지지 않는 온기가 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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